원간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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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카안, 고려를 복속하고 주권을 보장하다 - '조군(육사)'를 중심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2. 8. 5. 10:28
13~14세기 몽골(원) 복속기, 고려가 원 제국에서 행정적으로 '성(省, Province)'이라거나, 고려국왕을 '투하(投下)'로, 그가 관할하는 고려 인구를 봉읍(封邑) 내지 채읍(采邑), 즉 '아이막(ayimaq, 愛馬)' 정도로 보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들은 대개 고려의 재래왕조체제가 '부마고려국왕(駙馬高麗國王)'의 '왕부(王府)'와 '투하령(投下領)'의 특색에 불과하다는 모리히라 마사히코(森平雅彦)의 견해를 피상적으로 흡수하여, '원 간섭기'라는 용어를 '지배'보다 '간섭'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왕조의 유지를 강조하는 한국사학계에 비판적이다. 아울러 고려를 원 제국의 '점령지(Occupied Territory)'나 '식민지(Colony)'로 전망하고자 한다. 일전에 모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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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을까? - 종주권과 속국 그리고 조공국 등 개념사를 중심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 00:03
속국은 전근대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며, 노태돈·정병준도 전근대의 속국과 근대의 속국 개념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현대에서 속국이라 하면 종속국이나 비자주적 보호국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속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 왕조의 영토 내에 포함된 이종족 집단이며, 다른 하나는 조공국을 속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영토 내의 이종족 집단과 조공국은 엄밀하게 구분되는 존재이다. 조선은 중국의 속방으로서 내치와 외교 부문을 모두 대조선국 군주가 자주해 왔다고 한다. 즉 중국 왕조와 조공 책봉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과 자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이석현. "중국의 번속제도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중국 번속이론과 허상》. 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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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한중관계를 통해서 본 몽골제국의 유산카테고리 없음 2020. 6. 27. 20:28
14세기 후반 주원장이 북벌을 단행함으로써 카안 울루스는 갑작스레 한지(漢地, 키타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쇠퇴하고 있던 몽골제국이 마침내 해체된 것이다. 홍무제는 군웅들을 쓸어버려 화하를 안정시키고 오랑캐[胡虜]를 구축하여 중화를 회복했음을 대내외적으로 표방하였다. 그는 송조의 형세가 기울면서 중국의 안주인 노릇을 하던 북적 원조와의 단절을 주장했으나 결코 몽골제국의 유풍을 지울 수 없었다. 강남(만지)의 무장봉기집단에서 출발하여 오랑캐를 축출한 홍무제는 국호를 대명(大明)으로 정하였다. 이는 주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홍건적들의 신앙인 백련교의 영향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쿠빌라이 카안이 천신신앙에 기반하여 커다람을 극도로 강조한 추상명사 대원(大元)을 국호로 삼은 것을 계승한 것이다. 통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