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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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의 결정적 원인이 청의 식량난이라는 속설에 대하여 - 홍 타이지를 중심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0. 12. 20. 15:44
명청교체기, 명 질서의 붕괴를 상징하는 병자호란은 2019년 전후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제출되는 등 임진왜란에 이어서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필자를 포함한 이른바 '역덕후'들 사이에서도 병자호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출처불명의 와언들이 '최신 학설'로 둔갑되어 알려지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동학농민전쟁 당시 청군 차병이 허위라는 주장과 함께 사료와 연구들을 단장취의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본다. 병자호란의 동인은 청의 경제적 문제인가 근래에 이른바 '역덕후' 집단 일각에서는 병자호란은 조선이 어떤 행보를 보였어도 일어났을 전쟁이라고 주장하면서 병자호란의 동인, 즉 핵심적인 계기를 소빙하기와 명의 무역 봉쇄 등에서 찾는다. 실제로 청은 이러한 연유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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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대칸의 권위와 실체카테고리 없음 2019. 11. 14. 10:27
1229년 우구더이의 대관식을 묘사하고 있는 라시드 알딘(Rashīd al-Dīn)의 《연대기의 집성(Jāmi` al-Tavārīkh)》의 삽화. 우구더이(Ögödei)가 '칸(qan) 중의 칸'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이후 쿠빌라이(Qubilai)에 의해 몽골제국 군주의 칭호로 확립된 '카안(qa'an/qahan/qaγan)'은 14세기 후반 제국의 붕괴 이후 사실 그 권위가 점차 희미해져 16세기 이후에는 점차 소멸되어갔다. 따라서 이후에 작성된 몽골문헌들은 칸과 카안을 구분하지 않고 전부 카안이라고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와치르바니(Vajrapāņi, 금강수보살), 16세기 투머트 알탄 칸 치세로 부터 몽골의 불교화가 이루어지면서 칭기스 칸은 불법을 수호하는 화신 중 하나인 와치르바니로 전락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