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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공-책봉 관계는 종주국-속국 관계와 다를까? - 일국사적 시야의 문제점 -
    카테고리 없음 2021. 10. 5. 07:27

    최근 블로그 방문량이 갑작스레 늘어 찾아보니 부흥 카페에서 필자의 게시글이 댓글창에¹ ² 거론되어 유입 인원이 증가한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필자를 비롯한 아마추어층이나 대중적, 그리고 학계 일각은 여전히 '조공'이라는 형식의 동일함을 실질의 동일함으로 일반화하는 문제점과, 일국사적 관점에 기반한 특수성 부각이라는 문제점을 앉고 있다.

    혹자는 명청대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종주국과 속국의 개념으로 보는 논자들에 대하여 "이러한 견해는 중국과 조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의 충돌이나 의견차이에 의한 갈등을 간과한 것이다"고 하면서, "한반도와 중원의 국가 사이에 맺은 조공책봉관계가 강대국의 결정을 약소국에서 수용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해석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³ 적어도 명청대 중국과 조선을 강대국과 약소국으로 가정할 때, 그런식이면, 진짜 일방적으로 무기력하게 강대국의 요구에 순응하는 정치체는 몇이나 될까? 그런 것은 현대 국가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계에서도 드물지 싶다.

    이러한 주장들이 내건 '특수성'은 상술했듯이 상식선에서 무너진다. 근대 종속관계의 일종인 보호령 제도를 예시로 들자면, 피보호국은 영토관할권과 독자적인 국적과 법령, 즉 인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보호국의 단순한 일부로 취급되지 않았다.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아예 상실하지는 않은 것이다.영국과의 보호조약으로 사실상 외교적 주권을 몰수당한 19세기 후반 인도 봉신국(Vassal state)들은 영국령 인도 정부에게 봉신국은 독자적 법령을 가지고 있음을 들어 인도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위의 논리대로라면, 인도 봉신국과 영국과의 관계는 종주국-보호국 관계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세기 국제법상 속국(Vassal State)로 분류되는 국가들은 모두 인도 봉신국과 같이 상당한 주권을 제약받았을까? Henry Wheaton의 《만국공법(Elements of International Law)》에서는 '조공국(tributary state)'과 '속국(Vassal state)'이 병렬되어 사실상 같은 범주로 취급되고 있으며, "조공국(Tributary States), 그리고 서로 봉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States having a feudal relation to each other)은 그들의 주권(Sovereignty)이 이러한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자주국(sovereign)으로 인식된다."고, H. W. Halleck의 《국제법의 기초와 전쟁법(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and Laws of Wars)》에서는 "조공국(Tributary States) 그리고 봉건적 종속국(feudal dependence) 혹은 속국(vassalage) 지위에 놓인 국가들은 여타 국가들과의 관계가 파괴되지 않는 한 여전히 자주국으로 여겨진다"고 하여 대체적으로 그 고유의 주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었다.

    서문중(徐文重)의 초상. 1680~90년대 강희제가 예제를 정비하고 강화하는 시점에 조선은 명분이 약한 폐빈 장씨 아들 이윤(경종)의 세자 책봉을 주청하였고, 예부와 강희제는 "왕과 그 비가 오십이 될 때까지 적자가 없어야 비로소 서장자를 왕세자로 세울 수 있다(王與妃五 十無嫡子 始立庶長子爲王世子)"는 《대명회전(大明會典)》을 근거로 이윤의 왕세자 책봉을 거부하는 칙유를 내렸다. 숙종은 책봉의 불허 소식을 접하고 정사인 서문중을 비롯한 부사 이동욱, 서장관 김홍정을 삭탈관직하고 문외출송하도록 하는 등 사신들을 가혹한 처벌로 다스렸다.

    그렇다면 과연 홍무제가 내린 "성교(聲敎)를 스스로 하라"는 성지(성교자유)와 동치 연간에 총리아문이 "조선은 청조의 속국이지만 그 정교금령은 자주이므로 중국이 강요할 수 없다" 내지는 "조선은 청조의 속국이지만 내정과 외교는 자주"라는 언설(속국자주)은 조명, 조청관계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계승범은 명청대 조선에 대한 중국의 내정간섭이 통시적으로 있어왔음을 여러 논저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책봉 거부 사례에 주목하였는데, 중종, 광해군, 인조 등의 책봉 주청을 명이 두어 차례씩 기각, 광해군이 세자 책봉 주청은 모두 거절하고, 선조와 고종을 폐위하거나 조선을 직접적으로 관할하자는 주장이 명청대에 모두 거론된 적이 있음을 꼽는다. 그 외에도 조공 품목 및 수량, 명군의 조선군 징병, 임진전쟁기 지휘권 및 기타 간섭, 모문룡 문제, 청의 조선군 징병, 인사문제 관여 및 심옥, 조선국왕에 대한 벌은(罰銀) 부과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내정간섭 상황을 모두 예외로 치부하고 나면, 조선 시대 한중관계에서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고 꼬집었다.⁵ 문명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책봉, 즉 봉건적인 관계가 주권에 영향을 주는 경우 '반주권국(Semi-sovereign States)' / '종속국(dependent States)'으로 간주하는 서구의 국제법 체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일까?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공법 체계에서도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등장한 보호령 제도와 구분되는 봉건적인 질서에 따른 분류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면, "“속국”은 ‘근대적 개념의 주권을 갖지 못한 예속국’의 의미가 아니라, 앞서 “외국”이나 “외번”과 마찬그지로 ‘명과 분리된 국가’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⁶거나 "만국공법 이전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쓰이던 속국의 의미가 서양의 근대 개념으로서의 ‘vassal state’와 같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⁷는 주장들은 유효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호령 제도 조차 피보호국을 단순한 보호국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명사》 조선전 등에서 조선을 '외국'으로 보았던 것을 조선의 위상과 '속국(Vassal State)'의 큰 차이랍시고 거론하는 것이 어느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편, 조선의 위상을 '전통적 속국'이라고 지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포스트 모던 시기 이전에도 조선은 빈번히 속국으로 지칭되었다. 《명사》는 조선을 '외국'으로 분류했지만 실상은 '속국'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오히려 청말의 근대적 인식이 가미되어 의도적으로 조선을 속국으로 기재했다고 평가받는 《청사고》 조선전은 조선을 '속국'으로 분류하면서도 '외국'이나 '외번'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역을 이유로 명목상 조공을 바치거나, 무역 자체를 조공으로 둔갑하거나, 일회성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하거나, 실질적인 구속적 성격을 띄는 책봉과 조공을 한 정치체는 모두 '조공국'이자 '속국'이라는 중화주의의 특성상 외국과 속국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단지 명청대 조선이 이 폭넓은 범주 속에서 실질적인 구속적 성격을 띄는 책봉-조공 관계를 맺은 사실상 유일한 나라인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예제적 관계는 '속국(Vassal State)'의 자주권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봉건적인 질서가 그 나라의 주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경우 반주권 또는 불완전한 주권국가로 인식한다는 국제법적 해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둔전의 조항에 대해서는, 만약 중국인을 시켜 하게 한다면 그 해가 만배나 될 것이어서 그 지방의 백성이 반드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근래 중국 장수의 처사를 살펴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백성과 섞여 있으면서 공평 무사하여 백성이 편안하기를 바란들 어찌 그들 모두에게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조(前朝) 말기에 원에서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아국(我國)에 설치하고 다루가치를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그들로 인해 아국의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세가 아무리 급박하더라도 이것은 시험해보기가 곤란할 것 같습니다.
    《宣祖昭敬大王實錄》 권46
    원(元) 때에 누차 감국(監國)을 파견하였으나 그 사권(事權)이 불일치하고 분란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만약 조정과 왕을 폐하고 이를 고쳐 행성(行省)으로 삼는다면 거동이 기이하고 독특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李鴻章全集》 33, G11-06-021

    결론적으로, 쿠빌라이 카안 이래 동아시아에서 일원적 국제질서가 구현되고, 그것이 북경을 중심으로 원·명·청대로 지속되면서, 그 지근거리의 한반도 국가는 대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강화되며, 자주성도 이에 비례하여 퇴색하였다. 몽골 복속기, 몽골 황제는 고려 내정의 최상층에 군림하면서 그 황제권을 발휘하였고, 그 권위는 원명교체 이후 원명이 물리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카리스마를 유지했다. 조선의 주권자, 즉 조선국왕은 명 황제로부터 조건부 형태로 그 주권을 보장받았으며, 상술했듯이 이러한 황제의 책봉권을 매개로 대내외적인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지는 한반도 왕조는 언제든지 내정간섭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열려 있었고, 실제로 안보 위기 상황 등에서 내정간섭이 왕왕 있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근대와 근대를 막론한 보편적 현상으로, 보다시피 '근대'에만 있던 일들이 아니다. 일례로 청말에, 일부 식자들이 제기한 조선을 군현화하거나 감국해야한다는 논리는 서구에 대응하기 위해 서구의 방식을 변용한 것이나, 그렇다고 그 전례를 그 이전의 한중관계사에서 찾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대 입성론과 명대 직할통치론이나 감호론은 그 시대가 '근대', 그것이 '서양'이라서 제기된 일이 아니지 않는가.

    최근 유바다 등에 의해, 동서양의 국제질서가 상충되기만 한다는 인식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유바다는 근대 중심주의적 시각을 겨냥하면서, 《만국공법》을 비롯한 국제법 서적을 분석하여 '속국(Vassal State)'와 같은 봉건적 질서가, 베스트 팔렌 조약 이후 서양에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데니(O. N Deny)와 유길준 이래 '속국(Vassal State)'과 '조공국(Tributary State)'을 다른 차원으로 구분하는 기존의 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그에 따르면 국제법 질서 하 속국들이 어떠한 개별적인 국가성 내지는 주권을 일체 상실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은 더욱 진일보하여 안보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강압적 면모를 보여준 명청-조선 관계를 의례적인 관계로 국한하여, 서구의 국제질서와 구분하는 기존의 편만한 논리를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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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s://cafe.naver.com/booheong/208806
    2. https://cafe.naver.com/booheong/208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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